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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이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의 힘찬 엔진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는 처용의 전설과 조선의 국방을 책임지는 지역으로 이름을 알리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공장들과 굴뚝, 바다로 흐르는 물 옆에 자리한 처용암과 개운포 좌수영성을 다녀왔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세죽옛터라는 큰 표지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세죽마을로 불리던 곳으로 신석기시대의 조개무덤이 발견되고, 청동기시대, 삼한시대, 신라시대의 기록이 남은 곳입니다. 특히 신라시대부터 개운포라고 통칭되며 신라 헌강왕이 처용암 연회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수산업이 발달했고, 목도 동백섬으로 향하는 관광객으로 유명해지기도 했다가,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 공해지역으로 변해 다운동과 태화동으로 집단 이주했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용암은 정말 헤엄쳐서 갈 수 있을 만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요, ‘삼국유사’에 기록될 만큼 오래전부터 ‘처용의 바위’로 불려왔습니다. 신라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쉬고 있다가 구름과 안개에 가려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바다의 용을 달랠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자 구름과 안개가 걷히며 일곱 아들을 거느린 동해 용이 나타나 춤과 음악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용의 아들 중 한 명인 처용은 왕을 따라 정사를 돕고, 관직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처용암은 처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곳이라 전합니다.
처용암을 자세히 보니 용의 비닐을 닮은 듯한 돌과 바위가 인상적입니다.
바다 건너온 인재를 이런 전설로 표현되었지 않았을까는 상상도 되며, 아직도 울산의 영험한 기운이 있는 곳으로 기도처가 되기도 합니다.
처용암과 5분 거리에 바로 개운포 좌수영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개운포 성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최근에야 ‘개운포 좌수영성’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요,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전략적 요충지였던 개운포에 수군만호진이 구축되었다가 경상좌수영(1459년)이 설치된 곳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의 기록 속에 세 번의 전투가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울산만으로 흐르는 외황강이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는 약 1,264m로 긴 타원형의 성곽입니다.
평지와 산지의 특성을 가진 평산성으로 성내 골짜기를 가지고 있는 포곡성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성곽의 특성을 연구하는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지금은 성벽, 문지, 해자 등의 일부를 발굴, 정비하며 개방되어 있는 곳입니다. 해자는 성 밖에 흐르는 냇물로, 추정되는 위치에 징검다리를 놓아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현재 복원된 남쪽 성벽이 일자로 뻗어있고, 우물 터 일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대한 화학 단지 속에 남아 있는 울산의 문화재, 처용암과 개운포 좌수영성!
산업과 과학은 변하지만, 문화재는 변치 않고 이야기를 담아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Comments
사진만 전시하지말고 교통및 지역 안내(찿아가기 지도.네비주소)해주시면 감사하겠음